명절과 가족
명절과 가족
명절은 차례를 지내며 성묘를 하고
일가친척들을 만나는 날이다.
한 식구였던 형제들이
이제는 친척이 된 기분으로 모인다.
묘한 느낌이다.
며느리가 생기고 손녀가 생기니
더욱 그런 느낌이다.
각자 생활이 있고
딸린 식구들이 생겼으니
고작 명절이나 경조사 때나
어쩔 수 없이 만나는 사이가 됐다.
매일 만나는 이웃사촌이
더 가깝다는 말이 실감난다.
멀지도 않고
가깝지도 않는 형제지간이 됐다.
형제간의 거리,
부모와 자식 간의 거리가
멀어져서도 안 되고
너무 가까운 거리에 있어도
서로에게 부담스러워도 안 될 것이다.
그저 적당한 거리를 유지할 수밖에.
낯선 가족으로 보이지 않으면 다행이다.
가족과 친척관계,
거리는 예전 같지 않아도
천륜(天倫)은 변함이 없어,
참 어려운 문제다.
소설, 영화, Drama에서는
가족의 갈등을 주제로 하여
이를 더더욱 부추긴다.
평소에 전화도 하고
SNS 가족Band로 만나기도 하지만
어쩔 수가 없다.
하지만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경제적으로 걱정은 없는지,
육체적으로 건강한지 등등
궁금한 사항들을 묻고 확인한다.
인사치레 정도의 안부가 오고가는 시간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는다.
자연스럽게 정치이야기가 화제에 오른다.
나이가 많은 쪽은
나라가 망할 것처럼
큰일이라고 걱정이 태산인데,
젊은 층은 딴청을 한다.
정치가들과 Mass communication들이
세대 간의 갈등을 선동한다.
온 국민이 정치가가 됐다.
온 국민이 나라 걱정이다.
생각, 인식, 이해, 해석의 차이가
만만치가 않다.
억지로 걱정하는 척을 하는 것이
역역하다.
정치적 사회적 갈등의 축소판이다.
훈계의 말도, 사랑의 말도
다 큰 녀석들에게 잔소리로 들릴까봐
조심스럽다.
역시 편한 것이 덕담이다.
이마저도 잘 할 줄 모른다.
어른 노릇도 힘들다.
그들은 속으로 아빠, 엄마노릇도 힘들다고
무언의 항변을 하는 듯하다.
우리도 다 겪은 바라며
애써 아는 체한다.
좋은 부모, 좋은 어른도 되기란
정말 어렵다.
늙은이 고집불통으로 보이기 십상이다.
애비 마음엔 자식과 밀착된 관계를 유지하고 싶지만,
대가족 시대에서 핵가족시대로 이미 오래전에 변했다.
세상이 바뀌고
생활여건, 환경이 변했고, 변하고 있다.
유아교육도 엄마가 아닌 어린이집에서 한다.
옛날 방식을 고집할 수는 없다.
복지국가 운운하면서 요람에서 무덤까지
가족들의 역할을
국가가 할 일이라며 나서기에
가족의 가치가 떨어질까 염려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