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이야기

청안(靑眼)과 백안(白眼)

Peter-C 2019. 6. 3. 06:38

청안(靑眼)과 백안(白眼)

얼마 전에는 문대통령은 더 이상
김 정은이의 수석대변인이라는 말을
듣지 않게 해 달라는 말을 했다고 해서
국가원수 모욕죄니 뭐니 하며
난리를 쳤다.

이번에는 많은 실책에도 불구하고
책임을 묻지 않는 대통령을 보고
김 정은이가 더 낫다고 한 말을 가지고
시끄럽다.

정치인들의 세계는
거짓과 진실보다는
말장난, 왜곡,
선전과 선동의 세상이다.

무학 대사와 이 성계의
유명한 고사가 생각난다.

무학 대사가 기거하는 절을 찾은
이태조가 무학 대사와 곡차를 마시다
문득 대사에게 이런 농을 시작하였습니다.

“요즘 대사께서는 살이 뚱뚱하게 쪄서
마치 돼지 같소이다.”

“소승이 돼지처럼 보이십니까?
전하께서는 언제 보아도
부처님처럼 보이십니다.”

“아니, 격의 없이 서로 농을 즐기자고 해놓고,
대사께서는 과인을 부처님 같다고 하면 어쩝니까?”

“예, 본시 돼지의 눈에는 모든 것이 돼지로 보이고,
부처의 눈에는 모든 것이 부처님으로 보이기 때문이지요.”
“豕眼見惟豕 佛眼見惟佛”
(시안견유시 불안견유불)

세상을 보는 눈에는 두 가지가 있다.

청안(靑眼)은 좋은 마음으로 남을 보는 눈이고,
백안(白眼)은 눈의 흰자위가 나오도록
업신여기거나 흘겨보는 눈이란다.

이 옛 고사에서
무학 대사의 눈이 靑眼이라면
태조 이성계의 눈은 白眼이다.

인생은 어디로 가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누구와 같이 가느냐가 가장 중요하단다.

불교의 일수사견(一水四見)이란 말도 있다.

같은 물이지만
천계의 신은 보배로 장식된 땅으로 보고,
인간은 물로 보고,
아귀는 피고름으로 보고,
물고기는 보금자리로 본다는 뜻이란다.

보는 이의 시각에 따라
각각 생각하는 견해가 다름을
비유적으로 일컫는 말이다.

결국 사람은 자신이 보는 시각대로
세상을 보고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靑眼으로 보면 세상에 사랑이 가득하겠지만,
白眼으로 보면 미운 사람밖에 보이지 않을 것이다.

자기 잘못은 무조건 감싸고
남의 잘못만 트집 잡기에
혈안인 미움으로 가득 찼다.

그런 눈과 마음으로
세상을 살아간다면
얼마나 비극적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