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이야기

불신시대(不信時代)

Peter-C 2020. 3. 23. 07:13

불신시대(不信時代)

존경심이 사라졌다.
권위도 품위도 땅바닥에 뒹굴고 있다.
나라의 최고 지도자인 대통령을 향해
존중은커녕 욕지거리까지 한다.

나랏일을 하는 위정자들을 향해
막말은 일상이다.

언론인, 법조인, 종교인들 가운데
뭇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는 사람이 있나?
존경은커녕 신의도 없다.

서로서로 믿지 못하는 사회,
의심하고 경계하는 눈초리,
갈등과 분열이 만연한 세상이다.

믿는 마음은
순진함이요, 어리석음이 되었다.
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나?

옛날에 내게 온 “좋은 글” 내용이다.

어느 초등학생 소녀가 학교에 가자마자
담임선생님에게 길에서 주워온 야생화를 내밀며
이 꽃 이름이 무엇인지 질문했다.

선생님은 꽃을 한참 보시더니 말했다.
“미안해서 어떡하지
선생님도 잘 모르겠는데
내일 알아보고 알려줄게.”

선생님의 말에 소녀는 깜짝 놀랐다.
선생님은 세상에 모르는 게 없을 거라
믿었기 때문이다.

집으로 돌아온 소녀는 아빠에게 말했다.
“아빠. 오늘 학교 가는 길에 주운 꽃인데
이 꽃 이름이 뭐예요?
우리 학교 담임선생님도 모른다고 해서 놀랐어요.”

그런데 소녀는 오늘 두 번이나 깜짝 놀라고 말았다.
믿었던 아빠도 꽃 이름을 모른다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소녀의 아빠는 식물학을 전공으로
대학에서 강의하시기 때문이다.

다음 날 학교에 간 소녀를 담임선생님이 불렀다.
그리고는 어제 질문한 꽃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 주셨다.
소녀는 아빠도 모르는 것을
잊어버리지 않으시고 알려준
선생님이 역시 대단하다고 감탄했다.

그런데 사실은 어젯밤 소녀의 아빠가
선생님에게 전화하여
그 꽃에 대해 자세한 설명을 해주었던 것이었다.

아빠는 그 꽃이 무엇인지 당연히 알고 있었지만
딸이 어린 마음에 선생님께 실망하지 않을까
걱정이 되었던 것이다.

이 이야기는 “교육”의 기본 바탕은
“신뢰와 존중”이라는 것이다.

학교 교육과 가정교육은 백 년의 약속이다.
백 년의 미래를 위해
백 년의 시간을 준비하는 길고 긴 과정이
바로 교육이기 때문이다.

가정교육과 학교 교육이 잘 연계되고 조화를 이루어
가정에서는 스승을 존경하도록 가르치고
학교에서는 부모님을 공경하도록 가르치면
이상적인 인성교육을 할 수 있다.

선생님을 우러러 받드는 존경심과
부모에 대한 공경심이 없으면
교육이 되겠는가.

믿고 존경하고 공경하는 사회,
그런 아름다운 세상을 꿈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