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이야기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회

Peter-C 2020. 7. 12. 06:11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회

 

저명한 인사들의 성추문과,

부정의혹, 범죄협의가 만연한 세상이다.

분노가 들끓고 있다.

 

충남도지사, 부산시장 등

세상에 들러난 것만도 부지기수다.

 

저명한 인사란

이름이 세상에 널리 알려져 있는 사람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그들처럼 닮고 싶고

존경하며 따른다.

 

하긴, 인품과 품격은 물론 깜냥도 안 되는

저명인사(?)들이 허구한 날 News를 도배하고 있다.

그들 역시 부끄러운 줄 모른다는 공통점이 있다.

 

죄를 짓고도 너무 뻔뻔하다.

유명인으로 존경을 받으며 산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공적이든 사적이든

그의 언행은 모범적이어야만 한다.

 

자라나는 젊은이들이

보고 배우고 따르기 때문이다.

 

그랬던 그가

바르지 못한 언행,

올바르지 못한 삶을 살았다는 것이

드러나면 배신감을 느끼게 마련이다.

 

여성의 권익에 앞장을 서는

여성인권변호사로 “여성운동賞”까지 받은 사람이

“성추행”을 해 고발을 당했다?

 

딸 같은 여비서가 오죽했으면

고소장을 들고 경찰서를 찾았을까?

 

대한민국 수도 서울의 시장이요,

대통령까지 물망에 오르는 사람이

그래서 자살을 했다?

 

자살은 살인이다.

살인은 죄악이다.

인권변호사란 말이 무색하다.

 

어쩌다 한번 저지른 실수가 아니요,

술김에 순간적으로 한 잘못도 아니다.

 

그의 유언장에는 그 여비서에게

미안하다, 죄송하다,

용서를 빈다는 말도 없다.

무책임하고 비겁하고 비굴하고 비열하다.

 

조문객을 위해 시청 앞에 분향소(焚香所)를 차렸단다.

빈소에는 정치인들이 줄지어 조문을 한단다.

서울市행사로 5日葬이란다.

자랑스러운 일인가?

대한민국의 수치다.

 

어느 정치꾼과 추종자들은

자랑스럽다는 듯, 억울하다는 듯,

무슨 큰일이나 벌린 영웅처럼 호들갑이다.

 

부끄러움을 찾아볼 수 없다.

치욕이요, 파렴치한 일이다.

 

위선이요, 두 얼굴이다.

배신감이요, 모멸감이다.

아주 못된 일이다.

 

살아있는 부인과 딸은

어찌 세상에 얼굴을 들고 다닐 것인가?

창피해서 몰래 장례를 치루고 싶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