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울 수 없는 전화번호
지울 수 없는 전화번호
지난해 가을에 세상을 떠난
태환이가 불현듯 생각이나
연락처를 찾았다.
그를 떠올리며 이름을 쳤다.
변함없이 얼굴사진과 함께
전화번호가 떴다.
나는 그 번호를 누를 수는 있어도
그 번호에서 나에게
전화가 올 리가 없음을 안다.
실감이 나질 않는다.
파주 어딘가에 살아 있어,
금방 내게 전화를 해 올 것만 같다.
그의 얼굴모습이 예전 그대로다.
그의 파안대소가 떠오른다.
그의 입담이 그립다.
그의 Humor와 Wit가
금방 터져 나올 것만 같다.
통화를 누르려다 멈췄다.
부인이 받으면?
아들이 받으면?
딸이 받으면?
모르는 사람이라도 받으면?
뭐라고 인사를 하나?
그와 함께 다니던 청파동, 갈월동의
옛 거리 모습이 아련하다.
내가 잘못하는 당구, 탁구를 함께하던 추억,
술을 마시며 세상을 한탄했던 기억들이 생생하다.
내가 좋아한다며 파주, 일산 일대의 이름난
매운탕 음식점을 그는 찾아다녔다.
생도 4학년 때, 졸업을 앞두고 보병학교로
병과 교육을 갔었다.
그는 사병으로 입대를 하여
포병학교에서 교육을 받고 있었는데,
우연찮게 거기서 그를 만났다.
저녁 늦게 빵을 사들고
그의 내무반을 찾아가 불러냈었다.
나는 기억이 가물가물한데
그는 술만 먹으면 그때 일을
눈물까지 글썽이며 이야기한다.
수도 없이 들었다.
그가 저세상으로 갔지만
세상은 달라진 게 없다.
세상뿐만 아니라
나도 변한 게 없다.
그가 저 세상으로 가면서
얼마나 섭섭해 했을까.
그는 대통령을 잘못 뽑았다고
얼마나 한탄을 했던가.
지금도 변함이 없이 여전히 못마땅하다.
평소에 정치에 관심조차 없었던 그였다.
그의 소원대로 깨끗한 정치가 바로 서야한다.
하늘나라에서 나를 내려다보며
걱정마라, 곧 나아진다며
빙그레 웃고 있을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