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이야기

미리내

Peter-C 2021. 9. 7. 06:30

미리내 성지

 

미리내 성지를 다녀왔다.

 

미리내는 경기도 안성에서 북쪽으로 40리쯤 떨어진 곳이다.

미리내는 은하수라는 뜻의 아름다운 우리말이다.

 

미리내로 불리게 된 것은 천주교 신자들이

신유박해(1801)와 기해박해(1839)를 피해

이곳으로 숨어들어와 교우 촌을 형성,

밤이면 집집에서 흘러나오는 불빛이

달빛 아래 비치는 냇물과 어우러져

마치 은하수처럼 보였다고 하여 붙여졌다.

 

미리내는 한국 최초의 사제 김대건 신부의 묘소가 있다.

 

김대건 1822~1846(순조22 ~ 헌종12)

 

우리나라의 최초의 신부,

천주교 성인. 교명 앙드레.

충청남도 내포에서 독실한 천주교도 부모 사이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할머니와 부모님에게서 천주교의 교리를 익혔다.

1836(헌종 2) 프랑스 신부 모방으로부터 영세,

신학생으로 선발되어 최양업, 최방제 등과 함께

중국의 마카오에 건너가,

파리 외방 전교회의 칼레리 신부로부터

신학을 비롯한 서양 학문과 프랑스어. 라틴어 등을 배웠다.

 

그 후 마카오에서 민란이 일어나자

1839년에 필리핀의 마닐라에 가서 공부하여 6개국어를 익히었다.

1842(헌종 8) 프랑스 군함 제독 세실의 통역관으로 있다가

몇 차례의 실패 끝에 1845(헌종 11) 고국을 떠난 지 9년 만에 돌아왔다.

사람들의 눈을 피해서 포교에 힘쓰다가

페레올 신부를 데려오기 위하여 쪽배를 타고 중국 상하이에 건너갔다.

거기서 24세의 젊은 나이에 한국 최초의 신부가 되었다.

 

1846년 최양업과 다른 신부의 입국을 위하여

비밀 항구를 찾다가 체포되었는데,

서울로 끌려와 40회에 걸친 문초를 받고

9월 새남터에서 순교(당시 26)하였다.

 

당시의 상황으로 보아 참수하여 군문 효수할 것인데

헌종이 편법을 써서 효수하지 않고 매장하게 하였다.

 

매장 40일 후에 양성면 미리내에 사는 이민식 씨에 의하여

밤으로 7일에 걸쳐 운구하여 현재 미리내 묘지에 안장하였다.

 

192575일 로마교황 비오 XI세로부터 복자위에 올림을 받았고

198456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우리나라에 와서 직접 거행한 시성식에서 가톨릭 성인 자리에 올랐다.

<인터넷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