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을 강요하는 사회
사람은 누구나 아름다운 사회,
행복하고 평화로운 세상을 꿈꾼다.
고통이 없는 사회,
다른 사람을
고통스럽게 하지 않는 세상이다.
고통을 피하고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
인간의 궁극적인 목표요, 목적이다.
“행복이냐, 고통이냐.”를
따지거나 증명할 필요도 없거니와
증명을 할 수도 없다.
행복이 좋고
고통이 나쁘다는 것은
그냥 마음이
그렇게 느끼기 때문이다.
행복보다 더 좋은 것도
고통보다 더 나쁜 것도 없다.
행복 추구보다 더 중요한 것은
고통을 피하는 것이다.
죽음보다도 더 무서운 것이
고통이기 때문이다.
고통은 그 고통의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계속 아프다.
지금 이 사회는
고통을 강요하고 있다.
평창에서는 북한 선수단과 응원단이 뻔뻔스러운 모습으로,
청와대는 Bitcoin과 대북 송금, 흥진호 의혹으로,
국회는 “자유”를 삭제한 헌법 개정 모의로,
법원은 망가진 법치주의(法治主義)로,
TV는 편파적인 보도와 거짓 선동으로
보이는 곳마다,
듣는 것마다
곳곳에서 고통을 강요하고 있다.
친북 좌파의 현 정권이,
북한의 포악한 독재정권과 더불어
말할 수 없는 고통을 안겨주고 잇다.
국회의원들, 언론인들, 법관들은
한통속으로 짜 맞추기처럼
덩달아 고통을 부추기고 있다.
국기와 애국가의 수모(受侮)도 모자라
북한 괴수의 Badge와 인공기가 난무하고
천안함과 연평도 포격 사건의 원흉을 환영한다니.
아연실색(啞然失色)이 따로 없다.
포악한 살인마(殺人魔)를 미소로 손을 잡는다?
이게 말이 되는가?
있을 수 없는 작태(作態)를
버젓이 들어 내놓고 벌리고 있다.
위정자(爲政者)들은 양심과 도덕성을
포기하지 않고는 할 수가 없는 일이다.
이 고통을 어찌 참을 수가 있는가.
이렇게 쉽게도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고통을 안겨주다니.
자연이 주는 고통보다는
인간이 주는 고통이 더 악독하단다.
우리사회가 언제
이런 고약스러운 고통이 있었나?
세상이 온통 붉게 물들어있다.
이 고통이 언제나 끝나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