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이야기

우울한 설

Peter-C 2019. 2. 6. 07:25

우울한 설

설날은 늘 추웠다.
추워야 설날 기분이 드는지도 모르겠다.

먹을 것이 푸짐했었다.
안 먹어도 배가 불렀었다.
어머니는 무척 바쁘고 힘드셨지만
얼굴은 미소가 가득했었다.

이젠 옛날이야기다.
거리도 옛날처럼 부산스럽지가 않다.

식구가 우선 단출하다.
부엌도 생각보다 한가하다.
벅적대던 옛날이 그립다.

형제들과 만나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주고받을 텐데, 걱정이 앞선다.
기분 좋은 내용을 기대할 수가 없다.

경제도 안 좋지,
정치는 어지럽지,
국제관계는 불안하지.
방송도 밉살스러워 보기도 싫다.

내가 뭘 어찌해야 할
일도 없다.
생각과 말로만 걱정하고 있는
한심한 상황이다.
자괴감뿐이다.

기쁘고 시원한 소식은
찾아보기 힘들고
쓸쓸하고 어둡고 춥기만 하다.

그래도 설이다.
민족의 명절이다.

미디어 아트를 공부했던 조카가
졸업식도 전에 전공분야를 살려
취직을 했단다.
이 시대의 걱정이 청년실업이라는데
기쁜 소식이 아닐 없다.

무엇보다 손녀 승이의 재롱이
가족들에게 박장대소를 만들어준다.

재롱[才弄]이란
어린아이의 귀여운 짓이나 말이다.
하는 짓마다 예쁘다.
한참 귀여울 때다.

짧은 기간 동안에
말을 어디서 그렇게 많이 배웠는지,
“집중”, “Hint" 등 어렵게 여겨지는 단어들을
알맞게 천연덕스럽게 잘도 쓴다.

단어의 뜻을 정확하게 알고 있는 것이다.
감탄스럽다.
sponge가 물을 빨아들이듯
배움이 무척 빠르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소원성취를 기원하다면서
행복하고 즐거운 설을 보내라며
덕담을 주고받지만,
점점 그 옛날 설날이 더욱 그리워짐을
숨길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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