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기생 부음과 친구
마지막까지 남는 동기생은 과연 누굴까?
자주 만나는 동기도 있고,
정기적으로 만나는 동기생들도 있고,
1년 한 번 만날까 말까 하는 동기도 있다.
“너무 바쁜 사람과는 친구하지 마라.”는 말도 있다.
동기생이라고 다 같은 동기생이 아니다.
말로만 친구인 사람도 있다.
진정한 친구가 되라는 뜻일 게다.
동기생 부음을 듣고 “좋은 글”이 생각났다.
이곳에 그대로 옮겨본다.
세계적인 갑부 Walmart의 창업자 Sam Walton이 죽을 때
생(生)을 잘못 살았다고 후회를 했단다.
임종이 가까워져 자신의 삶을 돌아보니
그에겐 친구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이 없었던 거다.
돈이 암만 있으면 뭐하겠나.
곁에 친구가 없다면 참으로 불행한 삶이다.
어쩌면 가족보다 더 가까운 사이가 친구다.
톨스토이가 쓴 '이반 일리치의 죽음‘을 보더라도 그렇다.
임종을 앞둔 이반 일리치가 괴로웠던 건 용변을 볼 때마다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야 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불쾌하고 견디기 힘든
이 일을 도와주는 건 하인인 게라심이었다.
이반 일리치가 생각할 때 그의 처지를 이해하고
진심으로 그를 가엾게 여기는 사람은 게라심 한 명뿐이었다.
그가 잠자러 갈 생각도 잊은 채 곁에서 지켜주는 게라심에게
미안함을 표하자 게라심은 솔직하게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우리는 모두 언젠가는 죽습니다.
그러니 제가 당신을 위해서 수고 좀 못하겠습니까?”
이반 일리치에겐 게라심 같은 인물이
자기 곁에 있다는 것에 큰 위안을 받았을 것이다.
얼마 전 Warren Buffett의 일화가 매체에 보도 되었다.
미국 Nebraska 대학에 다니는 여대생이
세계적인 부호 Warren Buffett에게 물었다.
“지금 위치에서 과거에 배운 교훈들을 돌아볼 때
성공을 어떻게 정의 하겠습니까?”
Buffett은 주저하지 않고 대답했다.
“어떤 사람들은 성공이란
원하는 것을 많이 얻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내 나이가 되면 말입니다,
당신이 사랑해줬으면 하는 사람이
당신을 사랑해주면,
그게 성공입니다.
당신은 세상의 모든 부를 다 얻을 수도 있고
당신 이름을 딴 빌딩들을 가질 수도 있겠죠.
그러나 사람들이 당신을 생각해주지 않으면
그건 성공이 아닙니다.”
유안진 작가님이 쓴 수필
'지란지교를 꿈꾸며'를 보면
친구관계가 잘 나타나 있다.
지란지교(芝蘭之交)란
지초(芝草)와 난초(蘭草)의 사귐이라는 뜻으로,
벗 사이의 높고 맑은 사귐을 이르는 말이다.
누구는 친구가 많다고 자랑을 하는데
친구가 꼭 많아야 되는 것은 아니다.
친구가 적더라도 그런 친구가 있어야 한다.
나에게는 과연 진정한 친구가 몇이나 될까.
생각하면 자신이 없다.
왜냐하면 내가 그들에게
진정한 친구가 되려고 노력했을까 반문하니
그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