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이야기

어쩌랴, 이 편견을

Peter-C 2020. 9. 1. 08:16

어쩌랴, 이 편견을

 

나는 작가들을 존경하고 좋아한다.

 

김용택, 최인호, 박경리, 박완서,

정채봉, 정호승, 나태주, 이해인 등

이분들이 대표적이다.

 

평소에 작가의 글을 애독하다가

정치적 성향이 들어나,

나와는 다른 생각이 들면

곧바로 싫어진다.

 

도덕성에 문제가 거론되면

마찬가지로 배신을 당한 기분이 든다.

 

그런 인물들이 한둘이 아니다.

 

허구이든 진실이든

그의 글은 나로 하여금

순수함을 끄집어내었는데,

 

실생활에서 글과 다른

위선적인 모습이 싫은 것이다.

 

최근에 그런 작가가 한 사람 더 늘었다.

 

“아들아, 보아라.​

나는 원체 배우지 못했다.

호미 잡는 것보다 글 쓰는 것...”

 

“어머니의 편지” 림태주 시인이다.

 

나에게 좋은 Image였던 그가

“시무7조”라는 “상소문”에

대통령을 대신하여 답한 글 때문이다.

 

편견은 좋지 않은 줄도,

속물근성이라는 것도 안다.

 

어쩌면 좋으랴.

싫은 걸 어쩌랴.

단칼에 싫어졌다.

 

나는 그 글쟁이와 일면식도 없다.

감동을 받았었던 그의 작품도 싫어졌다.

 

진실성을 잃은 가식(假飾)느낌 때문이다.

나의 지나친 편견일까.

 

글 내용 자체로만 볼 수는 없는 것일까.

묘한 일이다.

 

“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못 본, 그 꽃”

 

그렇게 좋아했고 멋있었던

“그 꽃”이라는 시도 마찬가지였다.

 

공지영의 “수도원 기행”은 왜 싫어졌는가.

도종환의 “접시꽃 당신”은 또 어떻고.

 

왜 그들은 나에게

배신감을 느끼게 만드는가.

 

진솔함과 순수함이 깨졌다.

진실성과 진정성이 낡았다.

 

존경의 대상이 하루아침에

경멸의 대상이 되어버렸다.

 

그들도 국민의 한 사람이다.

정치를 외면할 수는 없다.

 

나의 편견과

그의 편견이 다를 뿐이다.

 

옳고 그름이 나와는 다르다.

더구나 그들은 전문 글쟁이가 아닌가.

 

검사는 검사다워야 하고,

판사는 판사다워야 하며,

작가는 작가다워야 하고,

사람은 사람다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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