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즈음에
설날이 다가오고 있다.
나는 매일 연휴지만
각별한 연휴다.
덕담(德談)도 오고간다.
무엇보다도 아버지와 어머니가 그립다.
살아생전에 불효가 늘 죄스럽다.
“죄스럽다”는
죄가 있다는 뜻이 아니고,
죄가 있다고 느끼는 감정인데,
나는 분명 불효라는 죄가 있음이다.
그러니까 나의 부모님에 대한
“죄스럽다”는 잘못된 표현이다.
친척 어른들에게
자주 찾아뵙지도 못했고,
안부전화도 제대로 못해,
이때쯤에는 늘 내 스스로
죄스럽게 느끼는 감정이다.
친구들에게도
친지들에게도
조금 더 다정하게
조금 더 친절하게
조금 더 잘 할 수 있었을 텐데.
억울하게 옥살이를 하고 있는 사람들에게도
나는 이렇게 편안하게 잘 지내고 있는데,
조금이라도 위로나 도움이 되질 못해,
마음뿐이니 무척이나 죄스럽다.
훌륭하게 직무수행을 잘 하고서도
세상이 바뀌었다고
고난(苦難)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김 관진 전 국방부장관에게도
아무런 도움이 못돼 죄스럽기 짝이 없다.
어이가 없을뿐더러 분하며, 원통하고,
화가 치밀어 견디기가 힘들 정도다.
이 설날에 굶주림에 허덕이며
폭정(暴政) 앞에 꼭두각시 노릇을 하는
북한 동포들을 TV에서 볼 때마다
우리들은 잘 먹고 잘 지내서
죄스럽다.
이 추운날씨에도
거짓을 들추어내고
진실을 밝히려고
고전분투(苦戰奮鬪)하는
일부 기자, 언론인, 변호사 등에게도
미안하고 죄스럽다.
반면에 기레기(기자 쓰레기)들은
언제쯤 사라지나 학수고대(鶴首苦待)한다.
내가 이만큼 웃고 즐길 수 있는 것은
내 혼자만의 힘과 노력이 아니다.
남들은
이 추위에 힘들어 하거나,
굶주림에 허덕이거나,
고난 속에 몸부림치고 있는데
나는 호의호식(好衣好食)을 당연시 하며
잘난 체 한다면
죄(罪)일 수도 있다.
어떻게 보면 죄스러움은
아름다운 감정일 수도 있겠다.
설날 즈음에는
늘 유난히 이런 저런
죄스러운 감정이 북받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