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오는 날에
눈이 내리고 있다.
이번 겨울엔 눈이 별로 안 와
아주 반갑다.
기다리던 눈이다.
눈 내리는 날은
창밖을 내다보며
명상(冥想)에 젖는 게 제격이다.
차분한 마음으로 깊이 생각하는 명상이
내게는 꽤나 어려운 일이다.
자칫 망상(妄想)이 되기 때문이다.
망상을 하다가 흠칙 놀라
맑은 정신을 되찾기라도 하면 다행이다.
눈이 온 세상을 하얀색으로 뒤덮는 중이다.
지붕위에도, 나무위에도
거리에도, 오솔길에도.
공평하다.
좋고 나쁜 것이 없다.
지저분한 것들이 감춰진다.
눈발은 즐겁다는 듯
춤을 춘다.
만족스럽다는 듯
맘껏 휘날린다.
눈이 내리는 모습은
아무리 봐도 질리지가 않다.
내 마음에도 눈이
차분히 내려앉아
다독이듯 살며시 녹아버린다.
눈이 내리는 소리에
귀를 기우려본다.
마음이 보인다.
겨울의 향기가 들린다.
눈이 내려야 겨울이다.
겨울 다음엔 봄이다.
진실이다.
진실은 단순하고 간단하다.
진실이 곧 생명이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세상이다
부끄러운 줄을 모른다.
양심이 없는 자들은
눈 속으로 숨느라 바쁘겠다.
그 뻔뻔함이 가증스럽다.
거짓을 덮으려 눈이 오는 것이 아니라
진실을 들러내려 눈이 오는 것이다.
거짓은 또 다른 거짓을 만들고
진실은 또 다른 진실을 밝히며,
거짓은 거짓끼리 통하고
진실은 진실끼리 통한다고 했다.
산책길 눈밭에 발자국이 선명하다.
진실이 서서히 드러나는 듯하다.
드러나기 마련이다.
눈은
거짓을 싫어함이 분명하다.
새빨간 거짓말을 더욱 선명하게 하고
새하얀 진실을 밝히려 내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