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이야기

“만동묘(萬東廟)”의 교훈

Peter-C 2019. 6. 7. 06:10

“만동묘(萬東廟)”의 교훈

“국제 외교 망신”, “국제 왕따 외교”,
“국제 외교 실수”, “국제 외교 실패” 등
표현이 민망하고 부끄럽다.

“사대주의(事大主義)”니
“반미주의(反美主義)”니 말들이 많지만,
우리나라는 지리적으로도
강대국 사이에서 있어
국제적 실리 외교를 잘 해야만 한다.

대통령이
중국에 가서 “혼밥”을 했다,
미국에 가서 대통령과 단 2분 대화를 했다는
News를 들은 게 엊그제다.

6월28일~29일 일본 오사카에서의
G20 정상회의 참석 전후로
중국 시진핑(習近平) 방한(訪韓)과
미국 Trump의 방한 구걸로
우리나라의 외교 상황이
어찌 이지경이 됐나 싶다.

기본적이고 근본적인 것은
나라가 부강해야한다.
힘도 없으면서 “자주국방”을 외칠 수는 없다.

“능력은 없으면서
상대에게 지기 싫어하는 마음만 가득하다”는
야당 대표가 대통령을 두고 한 말이
머리를 때리고 지나간다.

탄탄한 경제를 바탕으로
튼튼한 국방이 서는 것이다.
삼척동자(三尺童子)도 다 안다.

나는 역사적 공부와 지식은 부족하지만,
역사는 반복되고 있다는 말이 실감난다.

당파싸움 속에서
율곡(栗谷) 이이(李珥)는 “십만 양병”을 주장했었다.
그러나 결국 “임진왜란”으로
온 나라와 백성들이 유린(蹂躪)당했다.
선조시대 때 일이다.

뼈아픈 역사의 교훈을 잊은 채
붕당정치는 지칠 줄을 몰랐다.

붕당정치(朋黨政治)란
의리와 이해관계를 중심으로 붕당을 결성하여
자신들의 당론을 매개로
국정의 주도권을 획득하려 하는 정치 체제를 말한다.

조선 중기에 선조의 즉위를 계기로
사림파가 훈구파를 꺾고 중앙 정계에 대거 진출하며
정국의 주도권을 잡은 경우가 대표적인 붕당정치의 사례이다.

이후 사림은 동인·서인·남인·북인, 소론·노론 등으로 파벌이 갈렸으며,
각 붕당 간의 치열한 정권 다툼과 분열이 18세기까지 이어졌다.

만동묘(萬東廟)는 1689년(숙종 15) 송시열이 사사(賜死)될 때
제자인 권상하(權尙夏)에게 유명(遺命)으로 세운
중국 명나라 황제 위패를 모신 사당(祠堂)이다.

이곳은 노론의 정신적, 정치적 중심지가 되었으며
정치적으로 큰 영향을 가지고 있어,
“삼정승 위에 만동묘지기”라는 말이 있을 정도였단다.

잡인들은 얼씬할 수도 없었고,
이 지방에는 “뭣 쥐고 화양동 간다.”는 말이 있는데
누구나 그 앞을 지나갈 때는 허리를 굽히고,
양 손을 사타구니에 대고 걸어가야 했기 때문에
이런 말이 생겼다고 한다.

심지어 흥선대원군 이하응이 집권하기 전에
만동묘를 방문하여 만동묘 계단을 오르다가
하인에게 부축을 받았는데,
만동묘의 수복(守僕,묘지기)에게
날아 차기를 맞고 나가떨어졌다.

수복은 감히 주상전하도 황제폐하를 모신 이곳에서는
부축을 받을 수 없는데 건방지다며 흥선군을 꾸짖었단다.

흥선군은 이 수모를 기억하고 있다가
만동묘를 박살내기 위해서 서원철폐를 단행하고
동시에 전국의 모든 서원들을 철폐해버렸다는 일화가 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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