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이야기

정직과 진실

Peter-C 2019. 11. 5. 05:26

정직과 진실

요즘 항간(巷間, 일반사람들 사이)에
정직과 진실이 존재한다고 믿는 사람들이
과연 얼마나 될까?

진실이라며 떠들었는데,
금방 가짜 News란다.
“Fact”란 영어단어도 자주 등장한다.

매사를 의심하며 들여다보아야한다.
한 모습만 보고는 전체를 이야기할 수 없듯
“어느 날 그것이 오해였다.”,
“어떻게 진실이 그래!”라며
통탄을 하게 된다.

가득이나 평상시에 보이는 대로
그것에 갇혀버리는 실수를 한다.
게다가 편견과 고정관념의 방해를 받으며
전체 모습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한다.

보이는 것 너머의 진실을 바라보는 눈이
쉽지가 않다.

사물을 가끔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기를 한다.
상대편에서 보는 눈은 어떨지 생각도 해 본다.

가까이서 혹 멀리서,
위에서 밑에서 옆에서 여러 각도로 본다.

특정 부분만 보는 것이 아니라
전체도 봐야한다.

조금만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면
전혀 다른 면이 보인다.

놓쳤던 부분, 가려졌던 부분이 보이고,
이전까지 단점으로 보였던 부분이
굉장한 장점으로 바뀐다.

어떤 자리에서
어떤 마음으로 보느냐에
따라 달리 보인다.

제대로 보기란 이렇게 힘들다.
쉽지 않고 어렵다.

진실이라 할지라도
생각과 믿음까지는
숨이 막힐 정도다.

어떤 생각에는 숨통이 트이고,
어떤 생각에는 숨이 막힌다.

말에도 숨이 작동한다.
아름다운 창조의 말을 하면
만물이 숨을 쉬게 된다.
인간관계도 살려준다.

정직하면 손해를 본다는 말도 있다.
정직이란 남을 속이지 않는 것이 아니다.
나만 알고 있고
상대방이 모르고 있는 것을
상대방의 입장에서 해 주는 것이다.

그런데 왜 정직하지 못할까?
정직하면 손해 본다는 생각이 있기 때문이다.
사실상 손해 맞다.
손해 보지 않고 정직하게 장사를 하는 방법은 없다.
그러나 장기적인 안목에서는 절대로 손해가 아니다.

정직하면 손해 볼 수 있다.
바보 소리를 들을 수도 있다.
그래도 정직해야 한다.
정직을 가르쳐야 한다.
장기적인 안목에서 손해가 아니기 때문만이 아니라
인간사회 신뢰를 지탱하는 최후의 보루이기 때문이다.

이 보루가 붕괴되면
모든 것이 함께 무너지기 때문이다.
약육강식의 동물사회가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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