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다리 형님?
“잔다리 형님”
“버드내 아저씨”
내가 아주 어렸을 적에
어른들께서 오고가는 말씀 중에
어렴풋하게 들어 본 말들이다.
그러니까 “잔다리”나 “버드내”는
지명이름으로서
6.25때 피난을 갔었던 곳이거나
아버지와 할아버지의 고향이 아닐까 여겨진다.
아버지는 당신의 어렸을 적, 고향 이야기를
전혀 하질 안으셨다.
아마도 고생스러운 일들만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아침 죽을 먹으면
저녁을 먹을 보장도 없는 날이 허다하셨다고
지나가는 말로, 남의 이야기처럼 하신 적이 있었다.
아버님께서는
1916년 5월1일에 태어나시어
1978년 5월26일에 돌아가셨으니
아버지의 일생은 일제와 6.25 등으로
고난의 세월을 보내신 것이다.
어찌 기억을 하고 싶었겠는가.
요즘 세류동 주민센터로 Drum을 배우러 다닌다.
세류동은 수원역에서 남쪽으로 방향,
수원전투비행단 근처다.
“버드내”는 버드나무가 줄서있는 냇가를 의미하는 것 같고,
“세류(細柳)”는 “버드내”를 한자로 표기를 한 것이다.
“잔다리” 작은 다리, 한자로는 세교(細橋)를 뜻한다.
이렇듯 수원(水原)은
평야지대이면서도
물이 많아 샛강, 작은 하천들이
사방팔방으로 잘 흩어져 있었던 모양이다.
큰 물줄기는
광교산에서 서남방향으로 흐르는 “수원천”으로
수원의 시가지 중심을 지나간다.
시냇가에는 버드나무, 미루나무들이 줄서서 서있고
여기저기에 작은 다리, 건널목들도 많았던 것으로 추측이 된다.
그래서 그런지
냇가, 냇물에 얽힌 지명들이 많다.
동네 이름, 음식점, 지하철 역 명칭들에서
“세류”, “세교”, “잔다리”, “버드내”라는 말이 쉽게 눈에 보인다.
정조대왕(1752년 ~ 1800년)께서
융릉에 아버지를 모시고
용주사를 지어 효심을 달랬다.
수원에 화성 행궁 신도시(?)를 건설하면서
수원은 본격적으로 도시로 발전하여
오늘에 이르렀던 것이다.
이런 역사적 배경으로 수원은
충효(忠孝)의 고장이다.
수원의 향토 역사는 이런 연유(緣由)로
융건릉(隆健陵)과 용주사(龍珠寺) 그리고
화성행궁(華城行宮)을 함께 살펴보아야 한다.
화성행궁은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이래저래 아버지께 孝를 다하지 못한 것이 죄스럽고
금방이라도 아버지께서 나를 부르는 것 같아서
아버지의 목소리가 그립고 마음이 시리다.
아버님이 살아 계시다면 100세시다.
지금이 “100세 시대”라는데, 안타깝기 그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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