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산과의 한판 승부”
“태산과의 한판 승부”는
중앙일보 “삶의 향기” Column에
정여울 작가 글의 제목이다.
요즘 Drum에 도전하고 있는 나에게
가슴에 와 닿는 글이기에
나의 Version으로 꾸며봤다.
태산은 불가능해 보이는 꿈의 은유다.
내가 정말 Drum을 할 수 있을까?
나는 음악적 재능이 없는데?
Drum이 취미로 가능할까?
전문 음악가들이 하는 건데?
배운다고 큰소릴 쳤다가 그만두면?
실현 가능성을 이리저리 재다보니
그 꿈엔 낭만의 향기나 열정이 사라지게 된다.
겁부터 나고 두려움이 앞서는 것이다.
사실 태산은 생각보다 높지도 않고
나의 생각은 생각보다 훨씬 크고 깊다.
“오르고 또 오르면 못 오를 리 없건만은
사람이 제 아니 오르고 뫼만 높다 하더라”
태산의 높이를 가늠만 해보는 것보다는,
오르다가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더라도
일단 한번 굳세게 올라가보는 것이 낫다.
전혜린의 “먼 곳에의 그리움”이라는 수필에서
“모든 플랜은, 그것이
미래의 불확실한 신비에 속해 있을 때만
찬란한 것이 아닐까?
이루어짐 같은 게 무슨 상관 있으리요?”
“이 꿈이 이루어질까 말까”를 계산하기에 앞서
그저 미친 듯이 꿈꿀 수 있다는 사실이야말로
나의 영혼이 아직 젊다는 증거다.
최선을 다했는데 실패로 남는 것은
후회되지 않는다.
살면서 가장 후회스러운 것은
“잘 안 될 것 같은 이유”만을 상상하다가
“잘될 수 있는 기회”를 놓쳤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을 때이다.
정여울 작가는 키케로의 말도 인용했다.
“성실한 농부는 자신이 결코
그 열매를 보지 못할 씨앗을 심는다.”
농부는 하늘과 자신만을 믿고
씨앗을 뿌리는 것이다.
작가는 “성실한 농부”를 “위대한 농부”로
바꾸고 싶다는 충동을 느꼈다고 했다.
그러면서
위대함이란 바로
보이지 않는 미래의 씨앗을 심을 수 있는 용기,
그것이 위대함의 본질이라고 역설했다.
“태산”이라는 명성에 짓눌려
자신 안의 힘을 두려워하지 말고,
어깨를 활짝 펴고
용기를 살려 내는 것이다.
내가 Drum을 한다는 것이 위대한 것이 아니라
Drum을 하겠다는 도전정신이 위대하다는 것이다.
이제 진정
Drum과 한판 승부를 해야 할 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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