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사촌 형
훤칠한 키에 미남이시다.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를
우리 집에서 다니셨다.
3대 독자시다.
가까운 촌수의 친척이 귀했다.
우리와는 친형제나 다름없었다.
나의 외갓집은 경기도 광주,
지금 하남시, 검단산 밑이다.
나는 방학이 되면
으레 외갓집에서 보냈다.
그 시절에는 시외버스를 타고
석바대(지금 하남시 중심) 신작로에서 내려
논길을 따라 한참을 가다가
냇물을 건너서 힘들게 외갓집에 도달했었다.
지금 생각하니 엊그제 일 같다.
외가에서의 방학은 즐겁고 행복했었다.
외삼촌, 외숙모님의 극진한 대우 덕분이었다.
형은 경기도 도의원을 지내는 등
고향에서 활발한 사회활동을 하셨다.
만년필로 한자를 섞어 쓴
글씨체는 지금도 눈에 선하다.
훌륭한 명필이셨다.
문안전화를 드리면
무척이나 반가워 하셨다.
보름에 한 번은 전화를 드렸었다.
오늘 형님 장례 날이다.
병원에 입원하셨다는 소식을 듣고
기도를 하면서도
100살을 넘기실 줄 여겼는데,
안타깝기 그지없다.
그동안 든든하게 의지해 왔던
형님께서 떠나다니
뜬금없게 외로움이 몰려온다.
세상의 모든 걱정스러움을
모두 훌훌 털어버리시고
영원한 안식을 누리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