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이야기

맹사성과 대원군의 일화

Peter-C 2020. 12. 12. 07:17

맹사성과 대원군의 일화

 

1435년 조선 최고의 재상 맹사성은

벼슬을 내려놓고 온양에 내려가

초야에 묻혀 살았다.

 

당대 최고의 재상으로 이름을 떨친 그였기에

그 고을에 신임 사또가 부임하면

맹사성을 찾아가서 인사를 올리는 것이

관례처럼 되었다.

 

어느 날 새롭게 부임한 사또가

인사를 하기 위해 관아의 관리들을 거느리고

맹사성을 찾아갔다.

 

마침 밭에 나가 김을 매고 있던 맹사성은

사또가 온 것을 알았지만,

그를 밭의 둔덕에 세워둔 체

김만 계속 매고 있었다.

 

돌아갈 수도 그냥 서 있을 수만도 없던 사또는

팔을 걷어붙이고 밭에 들어가 함께 김을 맸다.

 

사또가 움직이자 관아의 관리들도 서로 질세라

열심히 김을 맸고, 해가 질 무렵이 돼서야

맹사성은 허리를 펴고 일어섰다.

“그만들 하시고 나오시게”

 

밭의 둔덕에 자리를 마련한 맹사성은

그제야 신임 사또의 인사를 정중히 받으며 말했다.

 

“고을의 사또로 오셨으니

오늘 하루만이라도 뙤약볕에서

땀 흘려 일해 보면

이 고을 백성들의 노고가

어느 정도인지 아셨을 것입니다.

 

아침저녁 밥상을 대할 때마다

밥알 하나하나에 맺혀있는

백성들의 땀을 생각하십시오.

 

그리하여 부디 모든 이에게 존경받는

목민관이 되시기 바랍니다.”

 

조선 말기의 왕족인 이하응은

조선왕조 제26대 고종의 아버지다.

 

이하응의 아들 명복이 12세에

제26대 고종으로 즉위하자

대원군에 봉해지고

어린 고종을 대신해 섭정하였다.

 

그런 이하응이 젊었던 시절 이야기다.

몰락한 왕족으로 기생집을 드나들던 어느 날이었다.

 

술집에서 추태를 부리다

금군 별장(종2품 무관) 이장렴이 말렸다.

 

화가 난 이하응이 소리쳤다.

“그래도 내가 왕족이거늘...일개 군관이 무례하구나!”

그러자 이장렴은 이하응의 뺨을 후려치면서 호통을 쳤다.

 

“한 나라의 종친이면 체통을 지켜야지.

이렇게 추태를 부리고 외상술이나 마시며

왕실을 더럽혀서야 되겠소!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뺨을 때린 것이니 그리 아시오.”

 

세월이 흘러 이하응이 흥선대원군이 되어

이장렴을 운현궁으로 불렀습니다.

 

이장렴은 부름을 받자 죽음을 각오하고

가족에게 유언까지 했다.

 

이장렴이 방에 들어서자 흥선대원군은

눈을 부릅뜨면서 물었다.

“자네는 이 자리에서도 내 뺨을 때릴 수 있겠는가?”

 

이에 이장렴은 거침없이 대답했습니다.

“대감께서 지금도 그때와 같은 못된 술버릇을 갖고 있다면

이 손을 억제하지 못할 것입니다.”

 

이장렴의 말에 흥선대원군은 호탕하게 웃으며 말했다.

“조만간 그 술집에 다시 가려고 했는데 자네 때문에 안 되겠군.“

 

그리고 자기 오른손으로 자기 무릎을 탁 치면서 말했다.

“내가 오늘 좋은 인재를 하나 얻었다.”

 

흥선대원군은 이장렴을 극진히 대접하고

그가 돌아갈 때는 친히 문밖까지 나와 배웅했다.

 

그리고 하인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금위대장 나가시니 앞을 물리고, 중문으로 모시도록 하여라.”

 

무장답게 목숨을 걸고 지조를 지킨 이장렴도 대단하지만

인재를 알아본 흥선대원군 또한 훌륭하다.

 

오직 나라를 생각하는 충신과 지혜로운 주군,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좋은 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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